24일 심의위 거쳐 7월 구의회서 의결

 

동명칭도 바꿔, 9월 1일 전면시행

관악구 27개동중 6개동이 통폐합되어 21개동으로 줄어들면서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동명칭까지 바뀌어 오는 9월 1일부터 전면시행에 들어간다.

통폐합되는 동은 봉천본동과 9동, 봉천2동과 5동, 봉천4동과 8동, 신림3동과 13동, 신림6동과 10동, 신림11동과 12동 등 6개동이다.

그동안 논쟁이 많았던 동 명칭개정은 지난 5월13일부터 20일까지 전체동에서 주민의견을 수렴했으며 6월5일 입법예고한 상태이다.

이를 두고 오는 24일 조례규칙심의위를 개최하며 7월에 개회하는 관악구의회 제158회 정례회에서 의결하게 된다.

이에따라 오는 9월1일부로 통폐합동과 남현동을 제외한 20개동의 명칭도 새로운 행정동명으로 업무가 이뤄진다.

동의 통폐합은 인구2만 미달동 등이 대상이었다.

새로운 동의 명칭은 역사성이나 지역특성을 참작해 동별로 여론수렴(찬성60%)과정을 거쳐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1994년 관악신문 창간호부터 62회에 걸쳐 연재한 ‘관악의 역사를 찾아서’(집필자 고 김영헌 향토사학자) 기사를 주로 참고했다. 당시 관악의 향토사는 본지의 연재기사뿐이었고 그동안 지역에서 본지의 양해아래 부분적으로 이 향토사를 참고로 유인물 등에 활용해 왔다.

행정동 명칭 선정 및 유래

연번

기존 동명

새로운

행정동 명칭

선정 유래 및 사유

1

봉천본동

은천동

(殷川洞)

우리나라 3대 대첩 중 하나인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고려시대의 명장 강감찬 장군의 초명이자, 관악구 최초의 초등학교인 은천 초등학교가 위치한 곳으로 강감찬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자 은천동으로 선정

봉천9동

2

봉천2동

성현동

(成賢洞)

조선중기 예조참판을 지낸 심의겸의 묘소가 있었고 그 자손들이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하였으며, 지형이 호리병처럼 오목하게 생겼다하여 호리목으로 불리우며 예로부터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라 전해 내려오는 곳으로 어질고 현명한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라는 뜻에서 성현동이라 선정

봉천5동

3

봉천4동

청룡동

(靑龍洞)

봉천 4동 , 봉천 8동은 청룡산 능선 및 계곡에 위치해 있는데, 청룡이란 명칭은 이 지역에서 청룡(靑龍)이라 새겨진 돌이 발견되었고, 산의 모양새가 마치 용의 형상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만물 중에 가장 높은 자를 뜻하며, 청운의 높은 뜻을 상징하는 용을 동이름으로 칭함으로써 지역에 길운이 있기를 기원하고 또한 청룡마을, 청룡초등학교 등이 자리하고 있어 청룡동이라 선정

봉천8동

4

봉천1동

보라매동

서울 서남권의 대표적 공원인 보라매 공원이 인접한 곳. 보라매공원은 공원 개원 전 공군사관학교가 자리했던 곳으로, 보라매란 사냥매라고 널리 알려져 있고 빠르고 용맹함을 뜻해 공군사관학교의 상징이며 이를 공원이름에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주민들에게 익숙한 명칭인 보라매동 으로 선정

5

봉천3동

청림동

(靑林洞)

나무가 꽉 들어찬 푸른 숲이란 뜻으로 靑은 봄, 동쪽, 젊음을 뜻하며 희망찬 마을을 상징하는 청림동으로 선정참신하고 느낌이 좋을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늘 행운과 건강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행운동으로 선정

6

봉천6동

행운동

(幸運洞)

참신하고 느낌이 좋을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늘 행운과 건강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행운동으로 선정

7

봉천7동

낙성대동

(落星垈洞)

고려시대 명장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터로 장군이 태어나던 날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진 것을 보고 송나라 사신이 큰 인물이 날 것임을 예언했으며 훗날 강감찬 장군이 재상이 되었을 때 그 사신이 장군을 만나보고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내가 문곡성을 못 본 지 오래였는데, 그 별이 바로 여기에 있구나”라고 경탄했다는 전설에 따라 ‘별이 떨어진 터’라는 뜻의 낙성대라 이름 짓고, 장군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삼층석탑을 세웠다고 하여 낙성대동으로 선정

8

봉천10동

중앙동

(中央洞)

봉천지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상업시설이 발달한 지리적으로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관악발전의 중심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중앙동으로 선정

9

봉천11동

인헌동

(仁憲洞)

고려시대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 장군이 고려 9대 덕종 1031년 8월, 84세의 고령으로 명을 다하니 장군의 위업에 인헌으로 시호를 주고, 현종묘정에 배향하고 11대 문종이 수태사겸 중서령의 직을 추증함으로써 강태사라 부르게 되었는 바, 장군의 시호를 따 인헌동으로 정함

10

남현동

남현동

(南峴洞)

남쪽에 있는 고개마을 이라는 뜻으로 南泰嶺(남태령)에서 유래됨. 남태령은 정조 임금이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기 위해 행차하던 중, 과천현 이방에게 고개이름을 묻자 “서울에서 남쪽으로 맨 처음 큰고개 이기에‘남태령’이옵니다”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음

11

신림본동

서원동

(書院洞)

신림사거리 지역은 강감찬 장군이 송도를 왕래할 때 자주 들렀다는 서원정이라는 정자가 위치하고 있어 서원말이라고 불리었는데 여기서 유래해 서원동으로 선정

12

신림1동

신원동

(新源洞)

신림지역의 근원이 되는 동으로 여기에서 신림동의 여러동이 분동 되었으므로 신원동으로 선정

13

신림2동

서림동

(西林洞)

신림지역 서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숲이 많은 쾌적하고 살기 좋은 마을이라 하여 서림동이라고 선정

14

신림3동

난곡동

(蘭谷洞)

조선 중종 때 우의정을 지낸 강사상의 아들로 승지 등의 벼슬을 지낸 강서의 호인‘난곡’을 딴 이름으로 강서는 성품이 활달하고 큰 뜻을 품었으며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일을 걱정함에 온 정성을 다하고 풍속이 퇴폐함을 걱정하고 조정의 기강을 바로 잡는데 힘썼다고 하며 강서의 묘가 난곡동 선영에 있음

신림13동

15

신림4동

신사동

(新士洞)

기존 명칭인 신림4동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위해 신사동이라 선정

16

신림5동

신림동

(新林洞)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신림역을 축으로 유행을 선도하는 상권의 중심지이며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상징하는 신림동의 대표적인 동네임

17

신림6동

삼성동

(三聖洞)

삼성산은 예로부터 풍수학상 호산형(虎山形)이라 하여 虎岩山으로 불려지기도 했으며, 신라 문무왕 당시 윤필대사가 일막사라는 초막을, 의상대사가 이막사를, 원효대사가 삼막사를 지어 수도하여 3명의 성인이 탄생했다는 데에서 삼성산이라 불려지게 되었으며 호국 불교의 본산지로 삼성산의 정기를 따 삼성동으로 명명함

신림10동

18

신림7동

난향동

(蘭香洞)

조선시대 명장 강홍립 장군이 말년에 일생을 마친 곳으로 장군이 은거할때 난초를 많이 길렀다는 데서 유래된 명칭으로 난초의 그윽한 향기가 느껴진다고 하여 난향동으로 선정

19

신림8동

조원동

(棗園洞)

예부터 마을에 대추나무가 많다고 하여 대추나무 마을이라 불리었는데 거기서 유래한 명칭으로 대추나무 棗(조)와 동산 園(원)을 사용하여 조원동으로 선정

20

신림9동

대학동

(大學洞)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학교가 위치하고 고시원이 밀집된 곳으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동네로써, 지역사회 인재를 양성하고 교육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의미에서 대학동으로 선정

21

신림11동

미성동

(美星洞)

아름다운 별이란 뜻의 미성(美星)은 현 문성골길의 옛 이름으로 현재 미성초등학교와 미성중학교도 위치하고 있어 미성동으로 선정

신림12동

※ 참고 자료 : 관악의 역사를 찾아서

관악신문 연재기사 (집필자 : 고 김영헌 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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